본인은 공군 공병 대대 출신으로 비행단의 설비를 관리 및 보수하는 일이 주 업무임.
일병때는 몽키스패너와 각종 드라이버만 있으면 세상 두려울 것이 없을 정도로 공병에 대한 자부심이 컸음.
보통 작업을 나가면 간부와 나 둘이서 나가는데, 대부분 작업은 나와 파트너인 6급 주무관님이 하시고 난 보조역할만 했었음.
참고로 공군에는 주무관이라고 간부같은 역할 하시는 분이 있는데, 공병의 경우 군간부가 일처리를 잘 못 하니까 주무관님이 대신 하시곤 했음.
우리같은 경우에는 주무관님이 웬만한 준위랑 친구일 정도로 상당한 짬킹이었음.
암튼 유류중대 사무실중에 연구실이란 곳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수도꼭지에 이상이 생겼다는거임.
"주무관님 꼭지가 이상합니다."
"뭐라는거야 미친놈이"
"꼭지가 이상하다구요!"
그래서 나랑 주무관님이 수도꼭지 교체하려고 연구실에 가던중에 주무관님께서 잠깐 유류중대 원사님과 이야기좀 나누고 온다고 밖에 산책감.
근데 그 왜 있잖아, 이 정도 수도꼭지 교체작업쯤이야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일병때라 그런가 한창 간부 및 선임에게 칭찬받고싶어서 그냥 나 혼자 가서 뚝딱 하고 나오기로 했음.
물론 지금 생각하면 너무 나댄 것 같음.
일단 주무관님께 칭찬받을 생각에 싱글벙글하면서 원래 부착되어있는 수도꼭지를 떼고 새 것만 교체하면 된다는 생각에 아무 생각없이 수도꼭지를 드라이버로 풀었는데, 알고보니까 내가 풀었던 곳이 물을 통과시키고 차단하는 밸브같은 곳이었음.
이걸 풀고 뗴는 순간 지하에서 상수 끌어오는 힘이 그대로 터져나오면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쎈 압력으로 물이 뿜어져나옴.
엄청난 압력의 물이 터져나오니까 나는 푸어억 거리면서 다시 꽂으려고 했는데 압력이 너무 쎄서 안 꽂혔고, 그때부터 당황해서 머리가 하얗게 되더니 5분 넘게 물만 쳐맞았는데, 생각해보니 그때 연구실 담당병사 한 명도 같이 물 쳐맞고 있었음.
그렇게 연구실은 물바다가 되고 진짜 마을 홍수난 것처럼 군화 발목부분까지 물이 차서 철벅철벅거림.
그 난리에 너무 소란스러웠는지 주변 간부들이 이 사태를 보게 되었고, 다들 나한테 온갖 쌍욕을 하면서 다같이 물에 맞으며 막아보려함.
결국엔 보일러실에 가서 상수도 밸브를 잠궈 해결했지만, 연구실은 워터파크가 된 상태라 이거 물뺀다고 중대에 쉬고있는 병사들 20명을 긴급집합시켜 다같이 물을 뺌.
아직도 그 20명의 독기에 찬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주무관님은 거기서 나보고 고생했다고 물뺴는 작업하다 말고 힘들었을거라면서 먼저 가서 샤워하라고 했는데, 이 난리 쳐놓고 나 혼자 씻으러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사양했으나, '쓰읍' 한 번에 개쫄려서 바로 생활관으로 달려감.
그렇게 샤워할 기분은 아니지만 샤워하라고 했으니 씻고는 있는데, 내 자신이 너무 자괴감이 들고 벌써부터 군생활 꼬였다는 생각에 샤워하면서 질질 짰음.
근데 나중에 주무관님이 오셔서 괜찮아 괜찮아 하시고 유류중대 가서 사과나 하고 오라 하셔서 가서 간부님들에게 사과드렸는데 간부들도 홧김에 욕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알고보니까 내가 생활관으로 씻으러 갔을 때 주무관님께서 당시 간부 중사들에게 열심히 하다가 실수한 것 뿐인데 왜 욕했냐면서 훈계했다고 타 중대 아저씨들에게 들음.
그때부터 주무관님을 군대 간부가 아니라 아버지처럼 따라다니며 군생활 열심히 하고 마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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